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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뒤에는 또 다른 영웅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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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LEA 댓글 0건 조회 6,906회 작성일 22-09-07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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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뒤에는 또 다른 영웅이 숨어 있다.


요즘 이순신 장군이 재조명 되는 영화가 화제다. 필자는 아직 시간이 없어 보지 못한 한산이라는 영화, 그리고 몇 해 전 ‘명랑’이라는 영화 모두가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그런데 이순신의 뒤에 누가 이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고작 서애 유성룡 정도다. 


하지만 서애는 다소 비겁한 부분이 있는 학자다, 1597년(정유년) 2월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은 '한산통제영'에서 체포된다. 한양으로 압송되어 '국형장'이 열리고, 선조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문무백관(200명) 모두가 "이순신은 역적이오니 죽여야 마땅하옵니다."라고 외친다.


이순신을 천거해주고 6계급 파격 진급에 힘을 써준 유성룡까지도 '공은 공, 사는 사'라고 하며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는 문무백관들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다. 목숨을 내놓고 이순신을 변호하지 못한 점에 다소 비겁하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틀이 걸려도 조정ㄴ에서는 이순신 형 집행을 못했다. 당시 '영의정 겸 도제찰사 (국가 비상사태 직무 총사령관)'인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이 선조의 어명으로 전시상태의 모든 권한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 상황에서는 이원익은 임금으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았던 것이다. 그가 극렬하게 막아선 까닭이었다. 이원익은 거듭되는 선조의 형 집행 재촉에, 역사에 길이 남는 그 유명한 명대사로 선조와 맞짱을 뜬다. 


"전하께서 전시에 신을 폐하지 못하시는 것처럼, 신 또한 전쟁 중에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을 해임하지 못하옵니다."


결국 이원익의 말을 부정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었기에 선조는 체념하고 만다. 이처럼 그는 오직 곧고 바른 판단과 집념으로 199명의 대신들의 청을 물리친 것이다. 


자신을 낮추고 오직 나라와 백성만 떠받든 공복, 그가 있으면 온갖 사물이 제 자리를 잡게 되는 소박하고 비범한 조선의 대표적 청백리, 말년 광명의 초가집 갓을 지으며 살았던 조선의 명재상 오리 이원익 대감, 그는 명랑해전에서 이순신이로 퇴로로 부안 지역을 예상하고 고을 수령들에게 그에 대비할 것을 주문했고, 이순신이 판옥선을 만들 때 송판 한 장까지도 일일이 지원한 인물이다,


더군다나, 거북선을 지을 때 그는 모든 지역의 목수와 장비 또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없었다면 우리 역사에 이순신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왕실의 사람으로, 그리고 높은 벼슬을 한 사람으로 누려야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84세로 눈을 감으시면서 모든 자식들을 불러 놓고, "나를 위해 부고도 알리지 마라!. 사후에 어떠한 사당이나 칭송된 일이나 비석도 세우지 마라!!"고 유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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