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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국토로 본 역사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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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LEA 댓글 0건 조회 5,794회 작성일 22-08-08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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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는 두 왕조 국가가 하나로 통합한 나라이다. 루왕프라방을 중심으로 하는 라오스 최초 통일국가인 란쌍 왕국과 참파삭 왕국이다. 루왕프라방은 란쌍 왕국 최초의 도읍지로 왕국은 수도를 비엔티엔으로 이동한다. 


1353년부터 1707년까지 약 355년 간 라오스 일대를 다스렸다. 불교를 국시로 언어는 라오어를 사용하였다, 현 태국 일부가 이 란쌍 왕국의 일부였다. 루앙프라방 (1353~1560) 수도를 비엔티안 (1560~1707)으로 이전하였는데, 이유는 산악지역의 북부에서 평야지역으로 지리적 요건 때문에 옮겼다.


산악지역에는 적의 이동을 쉽게 발견할 수 없었지만 비엔티엔은 평야지대라 적의 이동 상황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데 왕조를 지키는데 더 유리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남부에는 참파삭 왕국이 있었다. 매콩강 하류의 풍부한 삼각주 지역의 기름진 옥토를 중심으로 발현한 왕조다. 인근 캄보디아에서는 크메르 제국이 완성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찬란한 문화유산을 보존한 왕조이다. 


크메르 제국의 역대 왕조는 비옥한 토지를 가졌던 이 지역을 호시탐탐 노렸지만, 모래 폭풍과 우기 때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통에 쉽게 굴복시키지 못했다. 그러다 딱 한번 굴복시켰는데, 그 때 그들은 놀라고 말았다. 바로 참파삭 왕국의 푸라는 궁궐 때문이었다.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던 푸 궁전을 본따 그들은 앙코르를 건축했다. 당시만 해도 힌두 궁전이었던 탓에 후에 밀고들어온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모두 사원으로 변한다. 그래서 사원이라는 말 '왓'이 그 접두, 접미사로 차용되었다. '왓푸', '앙코르 왓' 즉 앙코르 사원, 푸 사원으로 변한 것이다. 


두 지역은 특성이 다르다. 남부 팍세 인들은 대개 얼굴이 검고, 대게 골격이 그리 크지 않지만, 단단하다, 그리고 문화적 배경도 조금씩 다르다. 남부는 주로 쌀농사를 짓고, 북부는 산악지역이라 얼굴이 희고, 겨울이 존재하며, 주로 산에서 나는 과일들을 먹고, 수렵생활을 했다. 


농사도 북부는 차를 재배하거나, 산에 벼를 심는 등 고산 지대에 맞는 생활을 했다. 한국처럼 소나무가 많고, 우거진 밀림, 그러나 남부는 대개 너른 평야 지역이라 쌀을 재배했다, 남부에는 열대 지역이라 과일도 풍부했다. 더군다나 프랑스 식민지 시절 ‘골라벤’이라는 지역에 많은 커피를 심어 그 일대는 커피 농장이 성행했다. 


그 커피는 유럽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로 성장한다. 이에 반해 북부는 녹차, 우롱차, 보이차 배후 지역으로 성장한다. 그걸 중국이 가만두었겠는가. 지금 한국으로 유입되는 많은 차는 이 지역에서 생산되고, OEM 방식으로 중국에 수출되고 거의 싼 값에 강탈당한다. 


여행도 이런 관점에서 달리 해야 한다. 북부 루왕프라방에는 밀림 속 꽝시 폭포, 란쌍 왕국 박물관, 씨엥통(에머랄드 사원) 사원과 란쌍 왕국 마지막 왕의 장례를 치렀던 화려하누 관 등이 관광 자원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푸시 사원은 새를 날려 점을 보는 오래된 풍습이 전해진다. 또한 비엔티엔과 루왕프라방의 중간 도시 방비엥은 그 유명한 불루라군(가보면 대부분 실망한다.), 아름다운 산을 배경으로 하는 호텔 조경 등이 유명하다. 


이에 반해 남부는 폭포, 세 곳 쌍봉 폭포, 사랑을 이어준다는 폭포, 어둠이 가득한 폭포, 커피 자생지 골라벤, 그리고 참파삭 왕국의 왓푸 사원, 그리고 한국이 복원해 주고 있는 홍랑 시다(시다 공주의 방)와 다섯 명의 선교사가 지났던 길과 고대 마을, 세계에서 가징 길다는 폰파펭 폭포, 내륙 국가인 라오스의 시판돈(사천개의 섬)을 지나는 유람선, 또한 프랑스 시절 건설된 아름다운 리조트 등이 볼 거리다. 


나는 이 지역을 특별히 관광 자원화하는 문제를 주 정부와 협의 중이다. 머지않아 한국의 비행기가 이 곳을 정기 취항할 예정이라고 하니 반갑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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